
어느 미물의 이야기
화 성주, 그러니까 지금의 ‘화성’이 있기 전, 아주 먼 옛날의 일이었다.
선락국의 보물이라고 불린 태자 전하의 탄일, 그 행사는 일반 백성이라면 꿈도 못 꿀만큼 매년 성대히 치러졌다. 화성에게도 그 기억이 잔존하고 있었는데, 선락국 국주 내외의 금지옥엽 태자 전하에 비한다면 비교하는 것이 수치스러울 정도로 작고 보잘것없는 미물에 불과했을 시절이었다. 물론, 화성은 지금도 어찌 자신과 그를 견주겠느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터다.
그 자그마한 미물은 황성의 외곽지역에 고향을 떠나왔으나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레 형성된 빈민촌에서 자랐다. 빈민촌의 사람들은 황성 한복판에서 열리는 사사로운 행사나 황궁의 일 같은 것은 쳐다도 볼 수 없었다. 그런 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이 신경 쓸 곳은 따로 있었다.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도 벅찬데 눈을 돌릴 틈 따위,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 미물도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축제와 행사를 이해하지 못했고, 싫어했다. 그는… 인간 자체를 혐오했다. 주변인들이 그를 딱하게 여겨 잘 대해줬다면 일이 달라졌을까, 그가 어렸을 적 어긋났던 것은 주위의 환경 탓이 아무래도 컸다.
인간을 혐오하는 그가 어느 날, 황성의 거리로 어쩌다 보니 나오게 되었다. 쫓겨난―정확히는 내던져진― 신세였으나, 이참에 한여름 황성의 활기찬 거리를 구경이라도 해보자는 심산에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황성은 축제 준비로 한창이었다. 건물 사이사이로 길게 늘어진 붉은 등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꼬맹아, 거기 서 있지 말고 비켜라, 비켜! 태자 전하의 탄일誕日 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태자 전하의 탄일 연회’. 어린아이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으나 대충 의미는 파악할 수 있었다. 곧 태자 전하라는 사람의 생일이라는 것이었다. 칫, 그게 무슨 대수라고. 아이는 짧게 중얼거렸다. 시끄러운 분위기도, 북적대는 사람들도, 화려한 거리도 아이의 상한 기분을 되돌려놓을 수 없었다. 높으신 분들의 사정 따위, 내가 알 게 뭐야. 나는 이렇게 사는데. 괜한 돌부리만 걷어차며 아이는 털레털레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
“아니 글쎄, 태자 전하께서 이례적으로 일찍 등선하셨다지 뭐예요.”
과연 ‘등선’은 온 백성을 하나로 묶는 특별한 일인지, 빈민촌에까지 소문이 뻗쳤다. 거리에는 수천 개의 사당이 세워졌고, 곳곳마다 향불이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태자 전하의 갑작스러운 등선은 신분과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아주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소년도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온종일 들떠있었더란다. 그리고는 자신은 물질적인 것만을 바라는 거짓된 이들과는 다르다고, 언젠가는 꼭 죽어서 귀신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에게 도움이 되고자 마음먹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태자 전하의 탄신일을 알았을 때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 그때와 달리 태자 전하는 소년, 이라기엔 아직 앳된 아이의 전부였다. 가까운 마을에 있는 사당은 황성 중앙의 거대하고 화려한 태자전에 비하면 초라하긴 해도 사람이 없는 어두운 밤, 아이의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구박하는 사람들이 있는 자신의 본래 보금자리보다 이곳을 더 선호했다. 아이에게 있어 이 사당은 집보다 아늑한 공간이었다.
아이는 태자 전하의 탄신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오늘, 황궁에서는 연회가 열리겠지. 태자 전하가 등선하고 나서 맞는 첫 번째 탄신절이니만큼 어느 때보다도 성대히 열릴 것이다. 이런 연회는, 대부분은 자기만족이었다. 아마 태자 전하가 하늘 어딘가에서 인간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 아이는 그리 생각했다.
늦은 저녁,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사당으로 들어온 아이는 여느 때와 같이 공물을 바쳤다. 자그맣지만 어여쁜 흰 들꽃 한 다발, 태자 전하께서 앞으로 누리실 복조와는 격이 맞지 않았으나 이것 또한 아이의 전부였다. 이럴 때면 소년은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을 질책하기에 십상이었다. 진주 같은 눈물방울이 또르르, 흘렀다. 이렇게 좋은 날 눈물을 흘리다니, 아이는 자신이 음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그때, 사당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사람이 올 줄은 몰랐는데, 아이는 재빨리 신상 뒤에 놓인 병풍에 숨었다. 그 사람은 향에 불을 붙이는가 싶더니 공물을 제상에 바치고 손을 맞대고 기도를 올렸다. 은은한 향내가 사당 전체를 휘감았다. 그 사람에 대한 적대심이 누그러진 아이는 호기심이 생겨 병풍 뒤를 빠져나왔다. 그 사람은 깜짝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표정을 풀고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야, 이름이 무엇이냐? 집은 어디고? 아직 어려 보이는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집엘 가지 않고 이런 곳에 있다니.”
“나는… 이름이 없어…요. 그냥, 여기가 좋아서, 매일…”
“매일 이곳에 오는 거니? 너도 태자 전하의 신도로구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
“탄신절!”
태자 전하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의 눈은 흑요석처럼 빛났다. 노인도 그것을 알았는지 허허, 하고 웃으며 아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 그렇단다… 옛날, 전하께서 세상에 처음 나왔던 날이 기억이 나는구나. 지금처럼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 하하, 너는 모르겠구나. 그럴 때가 있었단다.”
아이는 말이 없었다. 딱히 할 말도 없었을뿐더러, 제대로 된 대화는 오래간만이라 쭈뼛대는 것이었다. 노인은 말을 이었다.
“아이야, 너는 아직 어려서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은… 이기적이란다. 저렇게 화려하게 꾸미고, 잔치를 열고, 향불이니 뭐니 하며 조금이라도 콩고물이 떨어질까 싶으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게 바로 인간이지. 그러다가 자신들의 기대가 어긋나면 금방 돌아서는 것이야. 그래도… 아이야,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을 너무 미워하지는 말았으면 좋겠구나.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것이니. 태자 전하도 그런 인간들을 굽어살피시는 분이 아니더냐.”
아이는 노인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곤히 잠이 들었다. 노인은 가져온 향을 몇 개 더 피우고는 초를 끄고 흐뭇한 마음으로 사당을 나왔다. 아이가 이야기를 다 들었는지는 모르는 일이었으나 아이의 편안한 잠자리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름 모를 노인, 이름 모를 아이의 여름밤이 저물어갔다.
***
“……그런 일이 있었지.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 들을 만했는지 모르겠네.”
“괜찮아, 내가 모르는 삼랑의 어린 시절 이야기, 더 듣고 싶었는걸. 재미도 있었고. 그래서, 그 노인은 다시 만났어?”
“아니,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진짜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어. 귀신…이었을지도.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처럼 보였거든.”
“그렇구나. 그 말을 듣고 인간을 덜 싫어하게 됐어?”
“흠. 사실… 아니, 그렇지도 않았어. 그때는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지. 그렇지만, 노인이 해 준 마지막 말은 오래 남더라.”
“그래도 그런 분이 계셨다니,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네. 삼랑, 또 신세를 졌네. 고마워.”
“삼랑이 뭘. 그것보다, 오늘은 형 생일이었잖아. 아침에 상천정에서 무슨 재밌는 일 있었어?”
“휴, 말도 마, 난리도 아니었어.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긴 했는데… 그건 그거고. 오늘 하루 동안 쭉 삼랑 옆에 있고 싶었는데. 낮 동안 심심했지?”
“아니야, 조금 심심하긴 했는데, 참을 만했어.”
“그건 다행이네. 그래도 밤에는 이렇게 있으니까 좋다, 그렇지?”
화성이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그럼, 이제 시작인걸.”
“어…? 잠깐만, 삼랑! 삼랑…,”
화성은 애정을 듬뿍 담아 사련을 놀렸다. 화성이 후―입으로 바람을 내자 밝게 타오르던 등이 일순 꺼졌다.
“…제게는, 그때도 지금도, 오로지 전하뿐이니까요….”
서로 꼭 맞잡은 손이 풀릴 줄도 모르는 채로, 밤이 깊어만 갔다.



